Chapter.2

“저기 섬이 보이니까 다들 조금만 힘내자.”

“언제까지 가야만 하는 거야. 너무 지쳐.”

“이제 곧이야! 너도 보이잖아.”


묵묵히 가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한 아이는 계속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를 계속 다독였다.


“지친다고 그만두면 안 돼. 어제 봤잖아. 큰 물고기가 네 뒤에 있던 아이들을 잡아먹었어. 그걸 보고도 그러니?”


맞다. 어젯밤의 일이었다. 다들 오랫동안 계속된 헤엄에 지쳐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다 뒤처진 아이들이 몇 마리 있었는데. 큰 물고기가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나 보다. 아이들은 단말마와 함께 사라졌고, 큰 물고기만 우리를 보고 있었다. 우린 겁에 질렸지만, 헤엄을 멈출 수 없었다. 험난한 파도를 뚫고 왔는데 또 다른 장애물 때문에 의해 좌절될 순 없다. 아이들은 힘들어하는 아이를 밀어주기 시작했다.

“진짜 다 왔다. 애들아!”


멀리서만 보였던 육지는 어느덧 우리와 가까워져 있었다. 모래가 가득한 섬이었다. 그토록 우리를 힘들게 했던 바윗덩어리들은 보이지 않아 우리 모두 한시름 마음을 놓았다. 모래사장에 각자 굳어있던 몸을 풀기 시작했다. 한 아이는 모래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모두 휴식을 취하고 있던 때, 무언가 모래사장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기 뭔가가 걸어오고 있어”


모래 속에 파묻혀있던 거북이가 허둥지둥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들어가! 우리 다 같이 모래 속으로 숨자!”

“그. 그래!”


거북이는 나오려던 몸을 다시 집어넣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 같이 모래 속으로 최대한 몸을 숨겼다. 사람이 다가오는 발소리는 점점 더 땅으로 전달됐다. 터벅. 터벅. 터벅. 나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숨을 더 크게 참았다. 점점 더 가깝게 들려오는 발소리가 나의 심장을 더 빨리 때렸다. 그때 굉장히 둔탁한 소리가 바닥을 통해 전달해왔다.


“야!!!!!!!!!!!”


나의 몸은 고함에 경직되어버렸다. 그가 걸어오는 것이, 무거운 무게가 모래를 통해 전달됐다.


“으아아아!”


거북이 한 마리가 소리쳤다. 나는 친구의 소리를 듣자마자 모래 바깥으로 나왔다. 모두 나왔다. 그리곤 친구의 비명이 들리는 곳으로 바라보았다. 그곳엔 거대한 말이 서 있었다. 사실 내 눈으로는 말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거대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중압감을 주었다.

거대한 것은 손으로 내 친구를 들어 눈에 가까이 가져가더니 노려보더니 고개를 홱! 돌려 다시 우리를 보았다. 나는 그 모습에 움찔했다. 


“너네. 누가 여기 있으랬어. 돈은 냈어!?”

“네...? 그냥 바다를 건너오니 바로 여기 모래이던... 데요...?”


그나마 숫기가 많은 친구가 거인에게 말을 꺼냈다.


“야!!!!!!!!!!!!”


친구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인은 친구에게 고함을 질렀다. 결국, 거인의 손에 들려있던 친구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폭!


“왜... 소리를 지르세요...”

“너네가 하는 소리가 기가 차서 그래. 지금 하는 말이 얼마나 웃기는 소리인지 다른 곳에 가서 물어봐봐!”

“다른 곳... 어디요...?”


친구는 두리번거리며 다른 곳을 찾고 있다. 그걸 본 거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분홍색 얼굴이 빨간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게 어른한테 말대꾸하는 거 봐봐!!!!!!!!!!!!!!!!!!!”

“아... 아니에요...”

“앞으로 말대꾸하지 마. 안 그러면 이번엔 등껍질을 부숴버릴 테니까! 알겠어!!!”

“넵.”


거인은 ‘넵’ 소리를 듣고 그제야 화를 멈추었다.


“그래. 난 말 잘 듣는 애들이 제일 좋아. 그보다 너네 뭘 잘못했는지는 알고 있지?”

“네?”

“야!!!!!!!!”


거인이 또 한 번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거북이 한 마리가 뒤집혀 날아갔다.


“지금 너네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다는 거야!?”


나는 깨달았다. 이제부터는 그냥 입 다물고 알았다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 괜히 한 마디 더했다가 또 날아갈지도 모른다.


“알아요!”

“그렇지? 너네가 지금 밟은 땅이 내 거란 말이야.”

“네.”

“그럼 돈을 내야지?”


돈...? 돈을 내라는 한 마디에 아이들이 서로 곁눈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숫기 많은 친구가 한마디 했다.


“없는데... 요...”

“야!!!!!!!!!!!!!!!!!!!!!!!!!!!!!!!!!!!!!!!!!!!!!!!!!!”

말 끝나기 무섭게 거인이 화를 내어 제자리로 돌아온 친구가 다시 뒤집혔다. 이번엔 좀 더 멀리 갔다.


“돈 없으면 일을 해서라도 갚아야 하는 거. 알지?”


‘아니 방금 막 도착했는데 어떻게 알아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고함을 연속으로 듣는 것은 힘든 일이니 참기로 했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데요?”

“뭐... 일단 너네 진짜 방금 온 것 같은데. 살 집은 있어?”

“아뇨. 없죠.”

“그럼 따라와. 집부터 마련해주지.”

거인은 우리를 자신이 가져온 망태기에 담고선 어디론가 갔다. 친구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기대감에 부풀었다. 거인이 화는 많지만 좋은 사람이라며, 괜히 안 좋은 소리를 한 것 같다고 서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잘 보이지도 않는 틈 사이로 뭐라도 보겠다며 낑낑거렸다. 뭐라도 보려 하면 진자운동으로 인해 시야가 흐려지기를 반복했다. 지쳐있을 즘 쿵 하고 바닥에 부딪혔다. “아야!” 다들 아프다는 소리를 한마디씩 뱉었다. 껍질에 들어가기도 전이라 바닥에 살이 부딪혀버렸다.


“다들 빨리 나와!”

망태기에서 한 마리, 한 마리 나가기 시작했다. 나가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우리는 놀라고 말았다. 우리가 기다리던 집은 다 낡아가서 무너지는 허름한 모습이었다.


“여기에 살라고요?”

“그래. 이 정도면 좋은 집이지. 이만한 집이 없다고 여기에.”

“아...” “얼만데요?”

“내 밑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싸게 해줄게. 딱 20일만 일하면 여기서 한 달 살게 해주는 거지. 어때. 일단 집에 들어가 보라고.”


다 같이 계단을 올라가 방을 둘러보았다. 딱 한 마리가 누울 수 있을 만한 장소였다.


“이렇게 좁은 곳을 사는데 20일이나 일해야 한다고요?”

“싫어? 싫으면 뭐 다른 데 가서 살아야지. 근데 일단 돈은 주고 가야 해. 내 구역을 침범했으니.”


쏟아지는 말들에 ‘어버버’하며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


“아직 돈이 없어요.”

“그럼 일해야지. 일터로 가자고. 너희들은 오후부터 시작하니까 이미 임금의 반이 깎이니까 빨리 망태기 안으로 들어와.”


거인의 손짓에 우리 모두 자연스럽게 망태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또다시 흔들거리는 가방 속에서, 처음엔 틈 사이로 뭘 보려 했는데, 이젠 다들 포기하고 서로의 몸을 기댄 채로 포개졌다. 그래. 집을 벗어났으니 이 정도 각오는 했어야지... 그래도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아냐. 땅을 디디지 못한 애들도 있는데. 그 애들 몫까지 내가 힘내야지... 그래도...


계속해서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우리 그냥 바로 도망칠 걸 그랬나 봐.”

“그니까.”

“이미 망태기 안에 갇혀서 어디 가지도 못해.”

“이빨로 그물을 뜯을까?”

“한번 해볼래?”

“그래. 뭐라도 해보는 게 낫잖아.”

“그러다가 길을 잃으면 어떡해.”

“야. 그래도 거기서 살고 싶어?”

“그건 싫어...”

“그럼 빨리 물어뜯어. 빨리.”


친구는 당장에 그물을 다른 친구 입에 넣었다.


“앙이. 긍에 너아 우어 으으엉 되잖아!”


친구는 그물을 입에 물고 말하다 뱉어버렸다.


“뭐라고?”

“아니. 근데 너가 물어뜯으면 되잖아. 왜 나한테 물라고 하는 거야.”

“아. 맞네. 야 근데 시간도 없는데 뱉으면 어떡해. 빨리 뜯어.”


친구는 다시 화를 내는 아이의 입을 그물로 틀어막았다. 아이는 그를 째려보면서 우물거렸다.


“근데 이거 얘만 해서는 안 되겠다. 우리도 같이 뜯자.”


바라보던 아이들도 말을 듣고는 입에 그물을 넣었다. 6마리가 동시에 그물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야 뭔가 끊어지는 것 같지 않아?”

“아니. 말하지 마. 계속 물어뜯어.”


왠지 모르게 아이들이 점점 내성적인 성격에서 거칠게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이 묘하게 들었다.



“야! 끊겼어! 이제 금방 빠져나갈 수 있어. 너는 저기 잡고 나는 여길 잡을게. 당기면 찢어질 거야!”


다들 흩어져서는 줄을 잡는 아이들을 잡고선 힘을 쏟았다. 나는 당기는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느껴, 아이를 놓고선, 당기고 있는 줄을 끊기로 했다. 악으로 세게 깨무니, 당기는 힘과 끊는 힘이 만나 조금씩 줄이 늘어나는 듯하면서 얇아지고 있다. 


“됐다! 구멍이 넓어졌어!”

“이 정도면 나가기 충분할 거야!”

“그럼 누가 먼저 나갈래?!”


그 말에 다들 가만히 있었다. 먼저 나가기는 무서운 모양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모르는 곳이니까 어디에 떨어질지도 모르기도 하고.


“그럼...” 

한 친구가 마지막 말을 했던 친구를 바라보았다. 둘은 서로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뗐다.


“너가 말했으니 너가 먼저 가라!”

‘쏘옥’하고 친구는 구멍 속으로 떨어졌다. 아이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야!!!!!!!!!!!”


나는 그 친구의 마지막 비명이라고 생각했다.


“너... 어떻게...”

“뭔 소리야. 나도 나갈 거야 빨리 따라와.”


쏘옥


“정말 나갔네.”


그 순간 나는 무슨 용기가 났었는지는 몰라도, 친구를 뒤따라가고 싶었다.


“그럼 나도 나갈래.” ​


나도 그렇게 아이들에게 말을 전하고는 구멍으로 나갔다. 바닥이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껍질 속으로 들어가 생각했다.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고.


내 몸이 땅에 닿고는 어디론가 굴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굴러가는 것이 멈추고 나는 다리를 하나씩 꺼내 보았다. 그래도 살아는 있었다. 마지막으로 목을 내었을 때, 나는 엄청난 모습을 보았다.


거대한 기둥에 갈래로 뻗어 나온 봉들을 사람들이 힘겹게 돌리고 있었다. 거인과 비슷하게 생긴 또 다른 사람이 봉을 돌리는 사람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야.” 먼저 떨어진 친구와 그다음으로 떨어진 친구가 다가오고 있었다.


“죽는 줄 알았어...”


처음 떨어진 친구가 말했다.


“안 죽었으면 됐지.”


친구는 먼저 떨어진 친구의 등딱지에 손을 올리며 다독였다.


“병 주고 약 주냐?”

“아니.”

“근데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 여기가 우리가 일할 곳이라고?”

너무나도 괴기한 이곳이 우리가 처음으로 일할 곳이라니 예상치도 못했다. 저 네발 달린 괴물들은 저렇게 긴 줄은 왜 들고 있는 거지 싶었다.


“야!!!!!!!!!!!!!!!!!!”


멍 때리던 순간 거인이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내 망태기는 누가 찢어먹으래!”


우리는 소리를 지르는 거인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거인은 망태기를 친구들 앞에 대 보이면서 화를 내고 있었다.


“우리가 일부러 찢은 게 아니잖아요!”


또잉


나와 옆의 친구가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그 말을 뱉은 친구를 쳐다보았다.


“야. 우리가 끊었잖아.”

“됐어. 알 게 뭐야. 일단 안 했다고 잡아떼.

“그..럴까? 어차피 혼은 날 텐데.” 


거인은 화를 내다 말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다리가 벌벌 떨렸지만, 표정만은 태연하게 지었다. 우리에게로 오는 거인을 보며 내 다리는 더더욱 심하게 떨렸다.


​“뭐라 했어.”

“아니. 또 화만 내지 말고 일단 들어봐요. 우리가 안에 있어 봤잖아요. 냄새가 심하게 나던데. 그거 오래된 거죠?”


거인은 턱을 매만지더니 말했다.


“맞아.”

“몇 년 됐어요. 5년?”


또 한 번 턱을 매만졌다.


“아마도... 그 정도 된 것 같아...”

“그럼 찢어지기 마련이죠! 방금도 애들 안에 있는데도 그냥 턱 하니 내려놨잖아요.”

“으...음.... 에이 몰라!”


그러더니 멀리 가버렸다. 이게 통할지 몰랐는데. 이제 우리는 뭘 하면 되는 건지. 망태기에 담겨있는 아이들에게로 가면서도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애들아!” “우리 그냥 일찍이 떨어져야 했나 봐.”

“그냥 일하는 곳에 떨어진 것 같아.”

“그럼 괜히 고생했잖아.”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났다. 바다를 건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는데 또다시 힘든 일이 닥쳐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그냥 눈물이 주르륵 나왔다.


“울지마.”

“그래. 지금 울어도 소용없어. 울음 그쳐.”


아이들은 나를 안아주었고 내 눈두덩이를 닦아주었다.


“어이. 분위기 깨서 미안한데. 이제 일해야 하거든?”


나는 낯선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아까 긴 줄을 들고 있던 거인이었다. 보라색 거인과는 다르게 몸 색깔이 주황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몸에 얼룩무늬도 조금 있고...


“저기 저 사람들 보이지?”


우리는 거인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은 맨 처음 보았던 거대한 기둥과 봉을 사람들이 힘겹게 돌리고 있었다.


“네.”

“저렇게 봉을 돌리면 돼.”

“저희는 키가 안 닿는데요?”

“괜찮아. 다른 애들이 쓰다 남은 거 돌리면 돼.”

“그 애들은 어디 가고요?”

“글쎄.... 그러게. 죽었나?”


거인의 농담은 말없이 우리를 이동하게 했다.


“돈은 제대로 주죠?”

“그럼. 근데 너네 지금 빚진 게 많아서 바로 받지는 못할걸? 미노타네 해변이 얼마나 비싼 땅인데 함부로 들어갔어.”

“저희는 몰랐죠...”

“그래. 처음엔 뭐든 모를 수 있지. 그래도 갚을 건 갚아야지.”


거인은 우리를 우리 치수에 맞는 듯한 봉으로 데려왔다.


“자. 이 봉을 돌려서 전기를 채워야 한다.”


그 순간 거인이 긴 줄로 느릿하게 봉을 돌리던 사람들을 때렸다.


“악!”

“야! 빨리빨리 일하란 말이야! 시간 안에 발전량 못 챙기면 야근해야 하는 거 알지!”


점점 일하기 싫어지게 만드는 것 같은데 이 사람들...? 


좀 더 걸으니 정말 우리 크기에 맞는 기둥과 봉들이 있었다. 근데 어떤 조그마한 것이 낑낑거리며 이미 일을 하고 있었다.


“어이! 그렇게 힘이 없어서 제대로 돌릴 수나 있는 거야? 그럼 오늘도 야근인 거야!

“네에...”


그것은 검은 새였다. 원래부터 검은 건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몸에 끈적이는 액체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안녕.”


새는 우리에게 멋쩍게 인사했다.


“안녕”


우리도 떨떠름하게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새는 힘겹게 봉을 밀며 다시 자기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얘가 하는 거 보이지? 얘처럼 밀면 된다고. 근데 너무 느려서 원. 쩝.”


새는 거인의 말에도 표정 변화 없이 꿋꿋하게 밀고만 있었다.


“미안한데 잠깐만 멈춰줄래. 우리가 들어가고 같이 시작하자.”

“아. 미안.”


새는 봉 미는 것을 멈추었다. 우리는 각자 자리에 가서 봉을 잡았다.


“자 이제 다시 밀자.”

“어우. 조금 힘든데?”

“우리 조금만 속도 좀 내면 안 돼?”

“그럴까?”


나는 봉에 힘을 조금씩 더 주었다. 그러자 속도가 조금 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 어... 잠깐만! 잠깐만!!!”


새는 다급하게 소리치는 바람에 나는 돌리던 봉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새는 날개를 붙잡고는 엎드려있었다. 신음을 내는 걸 보니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자세히 보니 날개가 거의 찢어져 뼈가 드러나고 있었다.


“미안... 그렇지만 빨리 돌리면 내가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어. 정말 미안해.”

“아니야...”

“그래. 아파서 그런 건데 어떡해.”


우리는 그를 위해 천천히 봉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도 간신히 다시 봉에 손을 올렸다. 천천히... 천천히... 원을 그려갔다. 천천히 돌아가는 원 속에서 느꼈다. 이대로면 그들이 원하는 발전량을 채울 수 없다고. 역시나 생각한 대로가 맞았다.


“이게 뭐야!!!” “너네. 지금 이게 하루에 한 양이라고 할 수 있어?! 아무리 뻔뻔스러워도 양심이 있을 텐데 말이야! 미노타가 재워주기라도 하면 일이라도 열심히 해야 할 거 아니야! 이건 미노타한테 보고 들어간다.”

“죄송해요. 저희가 이 새한테 맞추다 보니...”

“뭐? 고작 한다는 소리가 동료를 팔아먹네?! 너넨 정말 안 되겠구나!”


우리 6명은 그 거인의 발을 잡으며 말하지 말아 달라며 애걸복걸했다.


“죄송해요! 저희가 내일은 더 잘할게요!”

“그래. 두고 보겠어. 반성하는 모습을 보니까 참는 거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감사합니다만 연거푸 내뱉었다. 거인은 흐뭇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일이 끝마치면 미노타는 참새와 함께, 우리를 그물에 우르르 담아놓고는 집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올려다보았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집이었다.

이곳에서 처음 지내는 밤. 사실상 집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냥... 그냥... 창고 아닌가 싶었다


 “에휴...”

“야. 한숨 쉬지 마.”

“야 내 한숨이 어떻게 들려.”

“들리거든? 내 방 안에 니 말소리 들리게 하지 마.”

“아니 이런 거지 같은 곳이 어떻게 방이야. 차라리 등껍질 안에 들어가는 게 낫겠어.”

“그럼 들어가.”

“그럴 거야!”


아이들이 한바탕 싸우기 시작했다.


“애들아...”


참새가 입을 열자마자 아이들은 모두 조용히 했다.

“그래. 고마워. 처음이라 그런가 본데 여기 방음이 안 되니까... 조용히 하자.”

“참새야 미안...”

“아니야.”


그러고 보니 오늘 일하느라 참새와 이야기 한 번도 못 해봤다. 아까 일하면서 잠깐 나눈 인사가 전부이다. 그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참새야.”

“내 이름 참새 아니야.”


아 이름이 있는지 몰랐다. 그냥 참새인 줄로만 알았다. 


“미안. 그럼 이름이 뭐야?”

“차미.”

“차미야.

“왜.”

“너는 어쩌다 이곳에 왔어?”

“난... 둥지를 떠나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으러 가는 도중이었어.”

“우리랑 같구나.”

“응. 근데 날다가 이상한 문에 빠져버렸어.”

“문?”

“살짝 다른 배경이 겹쳐서 보이길래. 호기심에 무리에서 빠져서 들어갔는데. 그대로 그 배경이 있는 세계로 들어간 것 같았어.”

“어라?”

“우리도 그랬었나?”

“우린 바다에만 있었는데.”

“근데 여기는 그 문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게 아니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아마 너희들이 모르는 순간, 거길 통해서 여기 왔을 거야.”

“바다였는데?”

“나도 하늘이었는 걸?”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긴 했다. 하늘에 문이 있을 리가 없잖는가. 그럼 우리도 결국 무언가에 빠지게 된 걸까. 사실 우리가 꿈꾸던 곳이 이런 곳이라고, 이렇게 힘든 곳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


나는 소리쳤다.


“엥?”

“우리는 여기 잘못 들어온 거야! 이런 거지 같은 곳에!”

“오... 그럴 싸 한데?”

“근데 그럼 뭐해 여기 나갈 방법이 있어?”


차미는 계속 끙끙거리는 소리만 내다 조그맣게 말했다.


“그 문을 찾는다면...”

“그래 그 문 찾으면. 그렇다면 다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차미야 한 번도 찾아본 적 없어?”

“응. 난 계속 일만 하느라 본 적이 없어.”

“그럼... 우리 팀을 짜서 찾아보는 거 어때?”

“오! 괜찮은 생각이야.”

“그럼 두 마리씩 짝을 지어서 가볼까?”

“그래. 한 마리보다는 안전할 것 같아.”

“그럼 조를 짜보자.”

“나랑 부꾸. 부찌랑 부무, 부키랑 부리. 이렇게 세 조로 나누는 거 어때?”

“그래. 나쁘지 않은 거 같아. 부미랑 부꾸. 나랑 부찌. 부키랑 부리... 메모...”

“어디 글 쓸 곳이 있어?”

“아니 머릿속... 메모...”

“근데 차미는?”

“야. 부찌야. 차미 날개도 저런데 나가면 고생이지. 생각 없이 얘기하면 어떡해.”

“어우... 차미야 미안.”

“괜찮아. 오히려 내가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

“아냐. 괜찮아. 난 차미 너의 날개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어.”

“그래. 고마워. 내가 생각해봤는데 일단 낮에는 일하니까 밤에 찾아봐야 할 것 같아.”

“그렇게 하자.”

난 그 뒤로 잠에 빠져 아이들이 더 얘기를 나눴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어나!”


한기가 가득 찬 건물 안은 미노타의 목소리로 울렸다.

몸이 조금은 아픈 것 같았다.


“므... 뭐야. 여기 왜 이리 추워...”

“아마 추위 벌레가 이 근방을 지나갔나 봐.”


차미가 내 방 앞에 서 있었다.


“추... 추 뭐?”

“추위 벌레.”

“체온이 낮아서 주위를 춥게 만드는 벌레야, 한 마리 정도는 괜찮은데 무리 지어 다녀서 꽤 춥게 만들어.”

“어쩐지 너무 춥더라.”

“자. 다들 빨리 일어나서 일 갈 준비하자! 시간 없다!”


미노타는 주먹으로 벽을 치며 소리쳤다.


“네. 빨리 나갈게요.”

“오. 역시 사람이든 동물이든 한 번 배우면 재깍재깍 알아먹는 게 최고지.”


으슬으슬한 몸을 이끌고 나가자니 너무 힘들었다.


“저 몸이 너무 아픈 것 같아요.”

“뭐?”


미노타는 나를 째려보았다.


“이놈 이거 거짓말하는 거 아냐? 일 나가기 싫어서? 그럼 넌 주말에 나와서 일해.”

“예?! 주말까지 일하는 건 심하잖아요.”


나는 너무 황당했다. 주말에는 애들과 탐사하러 가야만 하는데 못 가게 되면 일에 차질이 생긴다. 나는 생각하는 걸 그만두고 일을 나가겠다고 얘기했다.


“나갈게요!”

“거봐. 넌 꾀병인 거야.”


미노타는 콧방귀를 끼며 방을 나갔다.


“부꾸야 괜찮겠어?”

“모르겠어.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그날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 날개가 아픈 차미보다도 더 힘을 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고르타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어, 아픈 내색을 할 수도 없었다.


그날 밤. 원래 내가 나갔어야 하는 순찰이지만 나는 아파서 방에만 누워있어야 했고, 부찌랑 부무가 대신 갔다. 나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차피에게 이 주변에 대해 들은 것들을 벽에 자세히 적어놓았다. 그렇게 아이들은 첫 번째 정찰을 마쳤다. 대략 주위는 산으로 둘러 쌓여있다고 했다. 차원 문을 찾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은 산 쪽에 버려져 있던 천더미들을 가져왔길래. 우리는 그걸로 추위 벌레를 막을 수 있는 이불과 방한용품들을 대충이라도 만들었다.


“이걸로 조금은 따듯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힘들었던 밤은 이제 안녕!”


두 번째 정찰은 부키와 부리가 갔다 왔다. 아이들은 집에 도착하더니 모자와 목도리를 허겁지겁 벗고는 우리를 다급하게 깨웠다.


“애들아!”

“다들 일어나봐!”


부키와 부리는 방문을 두드리며 다급하게 깨웠다.

“아웅... 뭐야...”

“아! 차미야 미안해. 우리가 너무 급했어. 다시 누워.”

“차미도 들어도 좋은 소식 아냐?”

“아. 맞네.”

“차미야. 너도 들어봐.”

“우리가 숲속을 걸어가다가 빛을 발견했어.”

“비... 잋?”

“그래.”


아이들이 대충 이야기해준 것을 요약해보면. 숲 안에 기묘한 빛이 나는 곳이 있다고 했다. 나무들 사이로 은은한 회색빛이 펼쳐 나온 것을 보았다고.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다 같이 가보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부미는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한 번 더 보고 올게.”


나도 그것에 대해 동의했다.


“우리도 한 번씩은 갔다 와야지.”

“부꾸. 너 몸은 다 나았어?”

“그래도 몸을 따듯하게 하니까. 좀 나아진 것 같아.”

“그래. 그럼 내일은 부꾸랑 부미네 조가 갔다 오자.”


우리는 일을 끝마치고서는 집에 들러서 방한용품 몇 가지를 챙겼다. 저녁도 안 먹고 숲으로 곧장 갔지만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거란 희망 때문이었을까?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이쪽으로 가는 게 맞나?”

“맞을 거야. 애들이 알려준 거는 이 방향이 맞아.”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한참을 부스럭거리며 숲속을 걸어갔다.


“부꾸야 혹시 애들이 말한 게 저건가?”


부미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정말로 애들이 말한 것처럼 은은한 빛이 나뭇잎 사이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뭐에 홀린 것처럼 말없이 빛 쪽으로 향했다. 생각해보면 부미도 말없이 뒤따라온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빛이 점점 강해질 때 우리는 진짜를 보고야 말았다.


“우와!”

“진짜... 문이야.”

“차미가 말한 게 맞았어.”


문은 굉장히 커다랬다. 문에서 나오는 오묘한 색들이 나를 주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심장이 뛰었다.


“들어가 볼까...?”

“그래... 한 번만...”


우리 둘은 손을 뻗어 문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 순간 우리가 온 쪽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나는 손을 멈추었다.


“뭐야?”

“애들 있는 쪽에서 소리 났던 거 맞지?”

“빨리 가보자.”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로, 멀게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만 했다. 숲에서 거의 내려올 즈음. 건물이 환했다. 지금쯤이면 모두 자야 할 시간인데, 불이 켜져 있다는 것은 분명 어떤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새끼들 어디 있냐고!”


미노타의 목소리가 건물 안을 울렸다.


“저희 여기 있어요.”


부미는 미노타의 뒤에 서서 말했다. 미노타는 뒤를 돌아보더니 표정을 더 일그러트렸다.


“너네. 어디 있었어.”


미노타가 자기 얼굴을 우리 앞까지 가져오더니 으르렁거렸다. 나는 무서워서 눈을 제대로 마주칠 수 없었다.


“그게.”

“산책 갔다 왔어요!”

“산책?!”


미노타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네. 일하고 나면 저희 시간인데. 산책 정도야 나갈 수 있잖아요?”

“흠... 그건 그렇지만. 너네가 건강하지 않으면 우리가 피해를 보게 되잖아! 저 참새를 봐봐. 아주 밥만 축내는 식충이라고.”

“일하다가 다친 애한테 그렇게 심한 말이 어딨어요. 치료해주기는 했어요?”

“그건 직접 해야지! 내 알 바가 아니라고. 흥. 됐어. 앞으로는 조심해야 할 거야.”


미노타는 할 말을 끝내곤 계단을 내려갔다.


“너네 이거 먹어. 밥도 안 먹고 가서 배고팠을 텐데. 오늘 저녁이었어.”

“그래. 이건 좀 이따 먹고. 진짜 차미가 말한 대로 문이 있었어. 근데 우리가 뭐에 홀렸는지 그만 들어갈 뻔했다니까?”

“그렇군... 미노타가 큰 소리를 냈던 게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네.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할까?”

“일단 그럼 짐들을 다 챙기자. 방한용품 만들었던 것들도. 숲에 추위 벌레들이 있어서 춥더라.”

“좋아.”


나와 부미는 밥을 먹으며 애들이 짐을 챙기는 것을 지켜봤다. 


“아무리 정찰 갔다 왔다고 해도 너네건 알아서 챙겨야 한다. 알지?”

“알았어! 천천히 좀 먹자.”

“으. 여기에 다시는 있고 싶지 않다고.”

“내가 졌다. 빨리 먹을게!”

“드디어 나간다니. 너무 행복해~”

“이 거지 같은 곳, 드디어 탈출이다.” 


아이들은 기뻐서인지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보며 마저 남은 음식들을 입에 구겨 넣은 후, 도구들을 챙겼다. 모두 혹시 몰라 조심조심 집에서 빠져나왔다.

“아니. 근데 왜 밤에 찾아와서는 난리야? 저녁에도 간섭할 거면 돈 내고 하라 그래.”

“조용하고 신속하게 빨리 뜨자. 이제 안 볼 놈이야.” 


우리는 두 줄로 산에 올라갔다. 어두워서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우리를 대신해 길눈이 밝은 차미가 우리를 이끌어주어 다행이었다. 문에 도착만 한다면 그토록 힘들었던 시간은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안심하던 순간이었다.


“야!!!!!!!!!!!!!!!!!!”


모두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미노타의 목소리가 숲속 나무 사이를 헤집었다. 우리는 당황한 나머지 허둥대기 바빴다.


“뭐야. 쟤네 간 거 아니었어?”

“아무래도 아까 일 때문에 의심 했나 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직 그들과의 거리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발이 아팠어도 꾹 참았다. 다시는 그 지옥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더욱더 뛰어서 결국엔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갑자기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순식간에 밝게 빛나는 문 앞까지 다다랐다.


“무슨 바람이야?”

“바람이 불어!”


우리는 바람이 부는 방향을 보았다. 그곳에는 차미가 자신의 너덜거리는 날개로 힘껏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차미야!”

“야! 너 뭐 하는 거야!”


차미는 말했다.


“일단은 먼저 가!”

“차미야!”


차미의 뒤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미노타의 얼굴이 보였다.


“이 쥐새끼들이. 먹여주고 재워주니까 은혜를 원수로 갚아!!!”


차미는 마지막 친구까지 문 앞에 다다르자 날갯짓을 멈추곤 우리에게로 빠르게 날아왔다.


“애들아. 그래도 너희를 만나서 즐거웠어.”

“뭐야. 너 그렇게 얘기하지 마.”


차미는 웃더니 자신의 날개를 잡았다.


“으악!!!”


차미는 자신의 날개를 찢었다.


“너 지금 뭐 해!”


부미는 차미를 잡고 소리쳤다.


“아니야. 내 날개는 가망이 없어.”


그러더니 다른 날개도 땅에 대고 마저 찢어버렸다. 


“자. 이걸 가져가. 그럼 조금이라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을 거야.”

“너는 어쩌고!”

“난 이제 몸이 너무 병들어서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그냥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어. 그래도 너희가 내 날개를 가져간다면 난 행복하게 끝낼 수 있을 거야.” 


차미는 울면서 웃었다.


“잘 가. 애들아!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나 같은 친구들을 봐서 좋았어! 우리 다음에는 좀 더 좋은 세상에서 만나자!”


차미는 뒤돌더니 날개 없는 몸뚱이로 뒤뚱거리며 미노타에게 달려갔다.


“차미야!!!”


미노타는 차미를 집어 들었다.


“고르타! 쥐새끼들 잡아!” 


고르타가 우리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자 아이들을 모두 함께 문으로 들어갔다. 차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문으로 들어가자 두둥실 떠다니며 어디론가 자연스레 향했다. 나는 때 묻은 작은 날개를 꼭 껴안았다.


차미... 작고 검은 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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