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4

“그래서 그 사람이 너를 물어서 살아났다고?”

“응. 맞아.”

“그걸 어떻게 믿어?”

“믿지 않아도 좋아. 사실이니까.”


그녀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거북이들은 전부 이해하기 어려운지 머리를 잡으며 어지러워했다.

부찌는 여자가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너가 살아난 후에 그 남자를 죽였다. 그 말인 거야?”

“죽였다고 말할 순 없고. 내 형제들에게로 보내주었지. 물속으로 밀었거든.”


“무서운 사람이네.”

“그러게.”


부찌는 부미에게 작게 속삭였고 부미는 응했다.


“그럼 이제 뭘 할 건데? 복수는 끝났잖아.”

“그러게. 복수는 성공했는데 이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허무한 것 같기도 하고.”

“원래 꿈은 뭐였는데?”

“꿈? 어제는 그 남자를 죽이는 꿈을 꿨지.”

“아니. 아니. 그런 잠잘 때 꾸는 꿈 말고. 너가 하고 싶은 거 말이야.”

“꿈. 뭐였지? 잠시만 생각 좀 해볼게.”


그녀는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없었어!”

“에엥?”

“그게 말이 돼?”

“그럼 너희는 뭘 하고 싶은지 알아?”


거북이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우린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됐는걸?”

“나도 마찬가지야. 그 남자가 나를 꺼내지만 않았어도, 나는 계속 물속에 있었을 거라고.”

“그 남자랑 만나기 전엔 무얼 하고 살았는데?”

“그냥 내 가족들이랑 살았지. 애초에 물 밖에 나와서는 그 사람과 있었던 것이 전부야. 여기선 걸으려고 애를 쓴 것이 다였어. 나는 강제로 물 밖으로 꺼내진 것뿐이야.”


그녀가 바라본 거북이들의 얼굴은 모두 시무룩해 있었다. 그러나 부미는 이내 결심한 듯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럼 너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자. 내가 도와줄게.”


부미의 말을 듣고는 여자의 얼굴은 밝아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

“자! 떠올려봐!”


그녀는 거북이들의 말에 곧바로 생각에 접어들었다. 여자는 턱을 괸 손으로 몇 번이나 얼굴을 두드리며, 한 동안 곰곰히 생각했다.


“아!”

“이번엔 정확한 거지?”

“물론이지. 내가 물속에 살았을 때가 기억났어. 그 때의 난 돌 틈에 껴있는 풀들을 가꾸고 있었던 것 같아.”

“그 일을 좋아했어?”

“나름. 재밌어했던 것 같아.”

“오! 그럼 식물을 키우면 되는 건가?”

“그럼. 정원을 만들자!”


부키가 말했다.


“정원?”

“응응. 꽃이랑. 식물이랑 키우는 거야.”

“꽃, 식물...”


곰곰이 생각해보더니만 벌떡 일어나서 금세 자기 집으로 향하는 여자였다.


“어디가!”

“너네가 말해준 정원 만들러!”

“아무리 급해도 우리는 데리고 가야지!”

“그렇구나. 같이 가서 날 도와줘야겠어. 내 주머니로 들어와 다 같이 집으로 가자.”

“좋아. 근데 이름이 뭐야?”

“난 세미야. 너희 이름은?”

“부키, 부미, 부찌, 부리, 부꾸, 부무야!”

“그렇구나. 고마워!”


거북이들은 여자의 옷 주머니로 들어갔다.

부미는 세미가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게 미노타의 그물에 붙잡혀있던 기억이 떠올라, 주머니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바닥을 바라보니 세미가 걷고 있는 길이 검다는 걸 깨달았다.


“애들아. 근데 여기 있는 풀들이 다 죽은 것 같아. 풀들이 다 거멓게 생겼어.”


부미의 말에 부무도 머리를 내밀어 바깥을 쳐다보았다.


“그러게? 죄다 검은색이야.”

“땅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아냐 죽은 건 아닌 것 같아. 그냥 검게 변한 것 같아.”

“세미야 잠깐 멈춰줄래?”

“왜 그래?”


그녀가 멈추자 부무는 그녀의 옷자락을 잡고 땅으로 내려왔다. 부무는 풀들을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


“죽었으면 말랐어야 하는데, 이 풀들은 색만 검게 변했지 싱싱한데? 주위 풀들은 또 초록색이잖아.”

“누가 물감이라도 뿌렸나?”

“그건 모르지.”

“세미야. 이거 풀이 왜 그런 거야?”

“어 그러게? 왜 여기만 검은색이지?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하다.”


얼마 남지 않은 검은 길은 언덕의 집을 마저 인도했다. 여자는 문을 열어 거북이들을 주머니에서 꺼내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집안은 매우 적막했다. 세미는 거북이들을 내려놓자마자 서랍장으로 가더니 기구들을 마구잡이로 꺼내기 시작했다.

‘쩔겅’ 소리가 울리며 공구들이 서랍에서 떨어졌다. 거북이들은 떨어지는 기구들에 맞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 쳤다.


“조심해! 잘못 맞으면 등껍질이 부서진다고.”

“아아. 미안해. 내가 너무 급했나 보다.”


그녀는 침대에 거북이들을 옮겨주었다.


“근데 이 집은 너 혼자 살아?”

“그치? 이제 그 남자는 없으니까. 그가 데려온 형제들은 내가 다시 물가로 놓아주었어. 그것만으로도 내가 여기 있길 잘한 것 같아.”


부미는 빈 수조들을 둘러보았다. 더는 관리를 하지 않는 모양인지 물때가 꼈다.


“드디어 찾았어! 삽이야~ 이걸로 흙을 팔 수 있다고.”


그녀는 겨우 삽을 꺼내서 거북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거북이들은 다들 무미건조한 호응을 해주었다.


“자 그러면 무슨 꽃을 키워야 하지?”

“내가 아까 집 근처 들판에 꽃들이 조금 있는걸 봤는데. 먼저 그것들을 화분으로 옮겨보는 건 어때?”

“아. 그럴까? 시간은 많으니까 차근차근 진행해야겠어.”


다 같이 밖으로 나가서는 꽃들이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저기 있다!”


세미는 신나서 꽃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 순간 지나갔던 바닥의 풀들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어? 뭐야? 검게 변하고 있어!”

“우리가 아까 말했던 풀들이 다 세미 때문에 변했었나?”

“세미야!”


그녀는 거북이들의 소리에 멈춰 섰다. 그러자 검게 변해가던 길도 수그러들었다.


“너가 지나온 길들이 다 검게 변하고 있어!”


그녀는 밑을 한번 쳐다보더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거북이들을 다시 쳐다보았다.


“이거 왜 이래!?”

“글쎄. 일단 이유는 너인 것 같아!”

“나 때문이라고?”

“우리랑 오던 검은 길도 너 때문에 변한 것 같은데 몰랐어?”

“난 그냥 원래 그런 길인 줄 알았는걸.”

“너가 처음 걸어왔을 때는 그냥 들판이었을 텐데?”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문대며 미간을 찡그렸다.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인데. 낮에는 너무 우울하니까 그냥 잠만 잤거든, 항상 밤에만 밖을 나갔으니까 색이 보일 리가 없지.”

“흠... 이런 식이라면 꽃을 심어도 검은 꽃만 보일 거 아냐. 그럼 검은 꽃들로 정원을 만들자고?”

“괜찮아. 물론 꽃들의 원래 색깔이 생각날 순 있겠지만. 나로서는 이 자체만으로도 다시 살아가는 희망을 준다고 생각해. 나같잖아.”


그녀는 다시 걷기 시작하고, 거북이들은 그 뒤를 다시 졸졸 따랐다.


“그래서 왜 풀들이 검어지는지는 모르는 거야?”

“그건 내가 다시 살아나면서부터 그러는 것 같은데. 정확한 건 나도 잘 모르겠어.”

“뭐. 무슨 이유야 있겠지.”


들판에 다다르자 형형색색의 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세미가 지나가는 곳은 다 어둡게 되었다. 세미는 몇 걸음 더 걸어가다가 팬지꽃 앞에서 멈추었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채로 꽃을 바라보았다. 꽃으로 가까이 가더니 냄새를 맡았다.

파랬던 꽃들은 점점 거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변해가는 모습을 본 세미는 묵묵히 삽을 집어선 꽃들을 파내어 화분에 옮겨 담았다.

꽃은 거멓게 변했지만 푸르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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